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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쿵 저렇쿵, 사회에 대하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사기’였음을 온몸으로 입증한 노무현과 조갑제 기자 – 권위주의 시대가 가고, 개벽신앙 영호남 동학노인의 헛소리 과잉공급시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사기’였음을 온몸으로 입증한 노무현과 조갑제 기자 – 권위주의 시대가 가고, 개벽신앙 영호남 동학노인의 헛소리 과잉공급시대

 

일베 노인과 본인의 표현 방식이 다르다. 동학신앙 성향의 일베노인은 어떻게 객관적으로 서술된 중립적 표현을 어떻게, 농촌마을의 씨족적 주관주의로 바꿀까? 그것을 연구한다. 본인은 어떻게 농촌마을 씨족적 주관주의로 표현된 것을, 서양인문학적 중립어법으로 바꾸나 하는 차원이다.

 

민주당이 대대적으로 플랭카드로 노무현 운지일 홍보 플랭카드를 걸었다. “민주주의”를 호남 동학파 씨족주의와 이퀄관계로 놓고(김대중 연설문에도 그런게 많음), 그 전제로 바라보는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슬로건에서는 호남 동학세력의 씨족적 주관주의가 강하게 베어 있다.

 

필자는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인 명제 안에 호남 동학종족주의 안에서 서양적 세계관 있다는 모든 논리를 깨려고 노력했다. 물론, 셋트로 대구 경북, 혹은 부산경남 종족주의안에 서양적 세계관 있다고 같이 비판했다.

 

노무현 운지일마다 걸리는 사람 사는 세상이란 노무현 재단명은 후천개벽 동귀일체, 후천개벽 일원상진리, 천지공사 해원상생의 종말적 종족 연합의 상징을 의미한다. 이는 종족 내부의 의사표현이고, 종족 밖에서는 중국공산당 비슷한 공산주의 유형이라고 보는것도, 서양적 시선에서는 크게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다.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이란 명제 이면에 깔린 감정을 설명하면 이러할 것이다.

 

전두환이. 니가 먼데 부동산 투기를 막어.

 

전두환이. 니가 먼데 지방자치로서 지방부패를 막어. 노론은 원래 부패한 귀족이야. 니가 먼데 지방자치로 부패권리 막어.

 

전두환이. 니가 먼데 남북관계를 막어.

 

전두환이. 니가 먼데 공산주의 이념의 전파를 막어.

 

노무현 지지하는 열린우리당 종족주의의 꿈,

 

부동산투기운동, 지방자치로 부정비리하는 꿈,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부동산 투기영역 설정하는 꿈, 모든 영역에 공산주의 이념 전파하는 꿈.

 

이 좌파 종족주의의 꿈을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그들은 부른다. 반대측의 의견을 묻지 않고, 자기들이 곧 쌍방 대리를 한다고 논한다.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적으로 종족 밖에서는 사람 못 살 세상이었다. 노무현의 “사람”은 천도교의 시천주 인내천의 ‘연고자’의 天이다. 노무현과 문재인이 북한인권 외면하고 공산주의자의 인권만을 생각했다. 이분들 씨족 마을 기준으로 사람 사는 세상은, 그 종족 밖은 사람 못 살 세상이 얼마든지 된다.

 

노무현 세력과 연결된 조국교수의 [조국의 법고전산책]도 이 문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조국교수의 군사정권 비판은 거의 대부분 옳다. 그러나, 너무나도 군사정권 비판에 옳았던 잣대를 자신들에게 적용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말해서, <사람사는 세상>은 굉장히 몽롱하다. 고의적으로 몽롱한 표현으로 좌파진영만 우월성을 쥐는 불공평한 영역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필자는 영화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 비판을 참 많이 한다. (의식있는 사람은 김덕영 감독은 아무리 욕해도 지나치지 않을 좌, 우 모두 욕먹을 만한 법치를 포기한 동학신앙 노인들 재롱잔치 모드가 보인다) 이승만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역사담론의 대부분은 전라도 노론독재에서, 조선공산당을 거쳐, 남로당에 흐르는 씨족연고집단의 중화’(우주중심)사상이 베어 있다.

 

검색 조금만 해도 나온다. 반공권력이 우리를 국민 처리했어요. 하던 사람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인간을 만든다. 김덕영 감독은 명백한 이런 중화사상에 입각한 각자 양반가문끼리 제대로 갑질주의하면서, 이승만 반대편 양반가문의 폭압적 황당무게를 북한의 문제로 돌렸다.

 

영화 [건국전쟁]의 사실상 중심인 도서 [건국전쟁]을 낸 조갑제닷컴의 입장은, 윤석열이 의료참사의 주역으로 난타한다. 조갑제기자에게도 노무현 이상의 ‘동학종족주의’가 대량으로 보인다.

 

조갑제기자의 행각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부산경남소재의 의대 교수라고 한다. 이승만, 박정희를 조상신으로 빨면, 대량으로 동학 로직을 구사한다.(필자는 도무지 납득불가능한게, 서양의학을 동학신자가 교수를 한다는 점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노무현이 일제 강점기 공산주의 씨족을 중심으로 씨족향우회를 한다고 할 때 사고관이라면, 조갑제기자는 부산경남권 동학파의 씨족향우회 수준이다.

 

조갑제기자는 일베 과학을 구현하지 않은 호남 판사의 매우 헌법판례에서 교과서적 판결을 서운해하고 노여워한다. 정확하게, 민주당이 이태원 사고에서 모든 것이 우리 씨족이 아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운영하니 빚은 일이라고 노여워하는 것과 같다.

 

귀족끼리 천문학적이 각자 놀음으로 ‘종족=진리’를 대량으로 살포한다.

 

우리는 박정희, 전두환 법치를 극복하자고 했던 민주헌법국민운동본부가 아예 기망의 고의성으로, 지금 종족=진리 대방출이 하려는 실체였음을 이해해야 한다.

 

군사정권은 6.25 참전용사를 줄세웠다. 유교질서의 1인 제사장인 대통령 중심의 유교 예치주의를 했다.

 

유교 봉건제로 예악사상은 반드시 제사장 연고로 주관적으로 휘어진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박정희, 전두환 법치의 왕 중심 유교적 주관적 휘어짐을 극복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각 지역마다 대방출한다.

 

52년생 홍준표는 73년생 한동훈에게 어린애라고 한 모양이다. 판사출신 홍준표에게도, 법치보다는 동학신앙이 관심이다. 이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피곤함의 절정이 밀려온다. 기껏, 대구경북 지역에서 약간 남은 세력으로 우주중심론을 논하는게, 1987년 6월에 세계적 차원으로 민주주의 법치를 한다는 것이었나?

 

결국은 ‘진짜’는 뭔가?

 

한국 사회에서 동학파와 무관한 이들이 얼마나 지금 제도권에 있나? 거의 없다. 뒤집어서, 1인 통치권자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6.25 참전용사와 무관한 이들이 제도권에 없는 것과 비슷하다. 진짜는 이성법을 구현하는 제도권 문사들의 이성원리의 통함이다. 어떤 사람에게만 권력집중하면 그것이 휘어지기에, 먹물 주권은 맞으나 먹물에 공통약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요약하자.

 

1) 박정희 전두환시대는 왕 중심의 예악사상으로 6.25 참전용사 반대편을 몰랐다.

 

2) 서양법 정치를 한다고 경계심 해제하고

 

3) 실제 한 것은 종족과 부족별로 각각 우주중심론을 내세우며, 각각 자의적인 오랑캐몰이가 풍년이다.

 

4) 국민은 민주화신화의 사기를 주장하고, 국민취소권 발동을 통해서 민주화유공자 상당부분에 부당이득 및 불법원인급여를 논할 때가 됐다.

 

실제로도 우파에서 강신무 세습무 스타일의 정치무당이 많고,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 정보제공형이 발도 못 붙인다. 이 상황에서 희망과 기대는 진부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땡땡기념사업회’가 아니라 ‘땡땡 망각 사업회’가 필요하다. 다양한 기념사업회는 씨족권력으로서 그 종법제 지배체제의 꼭대기에 차지하는 귀족의 법 위의 잣대를 제도적으로 선점시킨다. 군사정권의 고문수사가 들어간 자리에, 이렇게 조선후기 부패경제의 토대인 ‘서원정치’가 변형되게 부활했다.

 

 

파행이 예외가 아니라,

파행이 정상이고, 정상이라 논했던 대부분이 사기 기망이다.